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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정리함/독서&좋은글

[펌]얼마 살지도 않은 운 좋은 남자의 인생

"부자가 되고 싶다"


아마 자본주의 세상에 사는 사람 대부분의 희망일 것이다.

세상엔 많은 부자가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었겠지.

나 또한 누가 보아도 부자다.

특히 자동차를 좋아하는 남자들에겐 선망의 대상과도 같은 부자

'현실 니드포 스피드'를 즐기는 부자.


이름모를 일베게이들과 했던 1년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순간 넴드가 됨을 잘 알고있다.

그래서 이 글은 작별의 글이다. 

글 쓰기를 마친 후 일베를 떠날 예정이다.



글을 쓰기에 앞서 글쓰는 나의 자세에 대해 고백해볼까 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가 열정팔이 꿈팔이 사기꾼들이다.

아니, 사기꾼이라고 칭하면 너무 과한듯 싶으니

열정팔이 꿈팔이 '생계유지꾼' 정도로 순화해야겠다.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요즘 젊은이들의 마음을 현혹하는 기사들이다.

(물론 해당 기사는 지금 말하려는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들으면 그럴싸하나 실제로 사업을 일궈낸 사람들이 보기엔 허점이 많은 내용이 가득하다.

무엇이 그런 이들을 만들었을까?

첫번째로 나약한 젊은이들에게 그 문제점을 안기고 싶다.

단시간내 어마어마한 경제성장을 한 후 우리나라는 많은 부작용과 살아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특정세대의 자식에 대한 과잉보호다.

"우리애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해서.."

언제나 자기자식은 특별하다. 그렇게 세뇌시켰다.

그 덕에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떠먹여줘야만 살 수 있는 멍청이들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쉽게 휩쓸리고 쉽게 감화된다.

개인적으로 '산낙지를 먹는 아이' 라는 웹 만화를 아주 감명깊게 보았다.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가 다 들어있더군.


힐링? 정말 듣기싫은 역한 말이다.

힐링콘서트? 떼로 모여 자신의 나약함을 더 나약하게 만드는 짓거리다.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남의 인생만을 쫓다가 허망하게 끝나버리는

요즘 젊은 세대의 행보는 의지박약들의 경연장이다.

그저 누군가 해놓은 길을 어떻게 하면 얻어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스스로 일구려는 노력, 스스로 제대로 알아보려는 노력, 스스로 개척하는 노력

단 한순간도 하지못한다. 



* 자칭 CEO, 스타트업 머저리들과의 만남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 또한 강단에 서있는 지인의 부탁으로

열정팔이 꿈팔이 강의를 아주 잠깐 한 적이 있었다.

'젊은 CEO들과 함께하는 무슨 어쩌구'였는데

나랑 몇살 차이도 안나는 대학생들을 앉혀놓고 

나름 내 기괴한 인생썰도 풀고 그랬었다.

헌데.. 로테이션으로 강의하던 다른 젊은 CEO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스타트업 업체의 자칭 CEO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열정팔이 꿈팔이 '생계유지꾼'이었지.


며칠에 걸친 강의를 종료하고 이들과 회식자리를 갖자 약속을 잡았었다.

내 일이나 하느라 세상물정을 잘 몰랐던 나는 

'이 사람들도 나와 같이 경제력도 있고 각자의 대단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겠구나'

라는 생각에 아주 뽐내서 빼입고(온몸을 아르마니로 도배해버렸다) 

내가 가진 차량중 제일 비쌌던 포르쉐 911 터보를 끌고 나갔다.

꿀리지 않으려고! (예전에 다른공간에 했던 이야기지만, 나는 끝없는 열등감으로 살아오고 있다.)

약속장소에 다다르자.. 음.. 뭐지 이 뚜벅초들은?


내가 준 강렬한 임팩트 때문이었을까?

술자리에선 나에게 모든 이목이 집중되는 듯 했다.

내 일밖에 할줄 몰랐던 나는 이들의 성공비결과 인생경험을 듣고 

성공한 남에게서 얻어가는게 없을까 기대를 하고 나온자리였는데

얘기를 점점 하다보니 이 뚜벅이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었다.

그래, 그냥 이렇게 강의나 돌아다니면서 생계나 유지하는 것들..

인터넷 찌라시들이랑 인터뷰나 따면서 홍보하는 것들..

어떻게 하면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남의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겨우 머릿속에 그런 저급한 생각이나 하는 것들..

스스로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고 큰 나무에 붙어 

달콤한 수액이나 빨아먹을 궁리나 하는 매미같은 것들.

그러면서도 현 정부와 사회에 대해 욕이란 욕은 다 하는..

원래 술자리는 다음날 해뜰때까지 먹는 나지만

그 글러먹은 마인드 자체가 역겨워 몇시간 안되서 자리를 떴다.


'성공해본적도 없으면서 성공을 가르치는 머저리들.'



나중에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서울시,중기청,이런저런 기업들에게 매달려 커미션이나 먹는

그런 그저그런 수임을 거창한 사업으로 과장하여 빌어먹고 사는 것들이었고

그들의 연 수입은 대략 2천~5천, 그마저도 비고정적이었다.

크게 실망한 나는 그때의 나름 열정적이었던 내 강의가 너무 부끄러웠고

다시는 그런 자리에 서지 않는다.


그때의 경험때문에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아주 조심스럽다.

나를 미화하지 않을 것이다.

읽는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할 불씨만을 줄 것이다.

그게 내가 글쓰며 가져야할 옳은 자세라고 생각한다.


* 내가 살아온 배경


이상하게도 한국사람들은 자수성가형 부자를 의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사회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재벌2세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오! 나는 오히려 고맙다. 

사업을 하다보면 그런 선입견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내 뒤에 뭔가 거대한 후광이 비출거라는 생각

비지니스 상대로 만났지만 갑을이 뒤바뀌는 묘한 상황

나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거래처

난 그게 사업적 무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 아버지는 전라도 어느 가난하고 애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래 나 하프홍어임 ㅇㅇㅋ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내 할아버지는 공일(지금으로 따지면 동사무소 주사쯤)을 하셨는데

애들이 많고 가난하다보니 그것으론 한계가 있어

양봉일과 나무치는 일을 함께 하셨다.

어차피 사람도 몇 안사는 시골마을의 공일이 뭐 있겠냐

거의 농사가 본업이셨지.

하지만 할아버지의 교육 철학은 조금 독특하여

남자는 무조건 서울행!을 고집하셨고

우리 아버지형제들은 너나 할거없이 서울로 내던지듯 올라오시게 된다.

우리 아버지는 자력으로 지방대를 나와 만만한 토목회사를 입사했는데

그게 지금의 현대건설이었다.

시골출신이 뭐 곱게 보였으랴? 우리아버지는 현장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지금도 열악한 토목현장이 그때는 오죽했을까 싶다.

한번은 내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던 중학생시절

아버지의 일터를 가보라는 체험과제때문에 아버지 현장에 갔었다.

무서운 중장비가 굴러다니고

지옥처럼 끓어오르는 시커먼 새 아스팔트 포장위에

우리아버지는 땀을 샤워기처럼 흘려대며 하루종일 서서 일하고 계셨다.

정말 너무나 서럽고 우리아버지가 너무너무 불쌍해서

집에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꺽꺽 거리며 울었다.

결국 나는 그 체험과제를 해가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 아버지는 바보처럼, 곰처럼, 묵묵히 현장직 30년을 근속하시고 

현장소장까지 가셨다가 몇년 전 은퇴하시게 된다.

마지막 받으신 연봉이 상여포함 8천정도셨으니 재벌2세는 당연히 아닐거다.


그런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 나는 내 용돈은 내가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동네 치킨집 전단지는 아마 다 내가 돌렸을거다.

엄마 친구덕분에 지하 골프연습장에서 공 정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뭐 그런 간단한 아르바이트들을 하며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IMF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그 시절 모두가 어려웠기에..

아버지 고향친구에게 투자를 해두었던 얼마 되지 않는 돈은 

두절된 연락과 함께 이미 사라진 뒤였다.

빚은 없었지만 여유도 없었다.

한달에 한번쯤 가다 서는 중고 프라이드만 계속 타오시던 우리아버지 

생애 처음으로 '새차'를 출고했었던 소나타2를 팔았다.

생활비를 해야한다며..

그 차 사시던날 아버지의 세상 다 얻은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차 나온 날 아버지는 퇴근하고 주차장에서 계속 차구경만 하시다가 밤12시가 되어올라오셨다.

그걸 알기에 눈물이 많이 났다.

온가족이 껴안고 울었다.

그때 생각을 하니 지금도 눈물이 난다.

내가 그때 아버지께 울며 약속을 했다.

"아버지, 내가 진짜 나중에 성공해서 벤츠한대 꼭 사드릴게요! 씨발.."

우리아버지는 지금 내가 생신선물로 사드린 포르쉐 카이엔을 타고 다니신다.


그때부터 나는 아르바이트의 갯수를 늘렸다.

나는 다양한 가게의 알바를 했다.

원래 꿈이 요리사였던 나는 주로 요식업장에서 일을 했는데

서빙도 하고 주방보조도 하고 다양한 요식업장에서의 허드렛일을 했다.

학교가 끝나면 야자없이 바로 알바를 하러갔다.

요즘도 야자 있나? 암튼 나는 다 빠졌다. 

내가 야자를 한 기억은 손에 꼽는다.

친구들에게 창피해 다른동네에 가서 알바를 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일(요식업 창업/프랜차이즈화)에 많은 도움을 준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내 가족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다.

오래만난 여자친구에게도 하지못했던 이야기를 잠깐 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이 가진 "맨손으로 어떻게?" 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 않을테니

저격을 방지하기 위해 약간의 가려짐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앞서 말했듯이 미화는 하지 않을거다.

어차피 내 인생 그리 미화할 수 있는 인생은 아니다. 

지금도 업계에서 욕 존내 쳐먹고 산다 ㅋㅋ..


요식업장을 전전하던 나는 성인이 된 기점으로부터 작은 일식집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사회에서의 첫 발을 내딛은 직업, 초밥요리사.. 그래서 내 닉이 이렇다.

오랜 알바질로 식당일이 손에 익은 나는 그 실력을 인정받았고

생선 껍질이나 벗기던 놈이 어느새 손님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그 일을 하며 가게에서 부족한 몇가지를 내 스스로 구입해 사용하게 된다.

(밝히진 않겠다. 하지만 아직도 그때의 인연들은 나를 XXX라고 부른다.)

일본에 있는 유학생에게 구매대행을 부탁해 직수입해서 사용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유학생 얼굴 한번도 못본 사람이었다. 
그냥 게임커뮤니티의 같이 친목질하던 회원일뿐.. 겜덕이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한국에 들어와 연락하고 잘 지낸다. 가끔 술도 먹고)

그때 나는 사장님의 부탁으로 사장님 친구가게에도 그것들을 구매해줬고

약간의 수고비를 받게 된다.

한곳 두곳 구매대행을 해주다보니

어쩐지 입소문이 났는지 열곳, 스무곳

대충 모아둔 돈 천만원정도를 들고 구매량을 늘리고..

그러다가 1년도 안되어 백여군데에 달하는 일식집과 분식집에 그것들을 납품하게 된다.

그때쯤 나는 본업이 바뀌게 된다.

유통업계에 정식으로 뛰어들게 된거다.

천만원으로 시작한 유통업의 시작이었다.


어느덧 내가 모아둔 돈은 몇천여만원, 그리고 많은 경험

나의 자산은 그것뿐이었지만 겁이 없었다.

전재산을 쏟아부어 유통업에 매진하게 된다.

성장은 더뎟지만 나날히 불어나는 규모에 참 재밌는 삶을 살고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삶이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이었던 것 같다.

매일이 흥분되고 아침마다 즐거웠다.

그때 타고다니며 영업하던 내 첫차 Kia~ 로체 깡통, 다시 사서 타고싶다.


나의 회사는 점점 커져갔다.

인연이 닿아 가락시장 매대에도 끼어들었고

가락시장에서 많은 신세계도 접하게 되었다.

내가 가락시장에서 뭔가를 잔뜩 가지고 집에 오면

가족들이 "너 가락시장에서 뭔 일 하냐?" 라고 물었고

난 그냥 놀러갔다 온거라고 매번 둘러댔다.

가족들이 나 사업하는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나중에 좀 잘되면 밝혀야지.. 하다가 정말 잘되고 나서 밝혔지 ㅎㅎ

근데 나중에 물어보니 눈치는 다 채고있었는데 말을 안하길래 가만있었댄다.

역시 평생 같이 산 사람들은 무섭다.


수입만 하다가 수출쪽에도 눈을 돌렸다.

그때가 일본에 수테이 물류창고 임대해서 쓸 수준까지 갔을때였다.

아무래도 그게 애국하는 느낌도 들고.. 그냥 단순한 생각이었지.

처음에는 온갖 잡템(?)들까지 다 일본으로 보냈다.

어떤놈은 수익이 잘 나고 어떤놈은 전량폐기수준

보통 감을 잡으려면 업계 선배들의 조언을 들어야 정상이겠다만

난 그러지 않았다.

그냥 던져보는거지 뭐..

그러다가 나는 재미난 사실을 알게되는데

일본에서 잘 팔리는 한국산 식품들은 결국 포장이 잘 된 가공품이란거다.

나는 병조림,통조림 위주로 수출을 했다.

예상대로 잘 먹혔고 쏠쏠한 수익이 나왔다.

고추장 간장 된장같은 장류와 젓갈,김 같은놈들도 한배에 실었다.

김이랑 된장이 참 잘팔렸었다.

일본의 가정식은 미소시루에 꽁치구이만 있는게 아니다.

일본사람이라도 집에서 매일 가이세키요리만 먹는게 아니니까

어차피 식문화는 비슷하고 같은 동양종자로써 미각도 비슷하다.

즈그들 미소된장이 있지만 가정식에서는 한국된장도 좋아한다.

나는 그 점을 그때서야 깨닫게 된다.

원래는 그걸 먼저 알고 수출을 해야하는건데 

지금생각하면 참 아찔하기도 하고 운도 억세게 좋은놈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던 중 우리회사는 어마어마한 매출폭증이 있게 되는데

그건 '한류'라는 반가운 흐름이었다.

한국 연예인들이 한국드라마에서 한국음식을 마구 먹어주니

자연스럽게 우리쪽에 물건을 요청하는 일본 거래처들이 늘어났다.

지금은 피터지지만 그때는 우리쪽 아이템에 경쟁도 별로 없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어차피 다 동반성장이었으니 참 행복하게 영업을 했다.

수입원으로 시작한 회사가 수출위주의 회사가 되었고

나는 그때 세상에서 만져볼 수나 있을까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

성장 최고점에선 자고 일어나면 차 한대씩 들어올 수준이었으니

지금도 그때의 영광이 아른거린다. 

요즘 이거저거 하다 망해서 힘들거든.. ㅠㅠ

아보카도도 좆망했고.. 게임회사 하던것도 좆망했고..

2년동안 세금도 뒤지게 많이 뜯겼고..

돌아오라 내 리즈시절...... 


암튼 다시 원래이야기.

현금이 아주 많아진 나는 금융쪽 사업도 전개하게 된다.

좋은 인연을 만나 작은 회사에 큰 힘을 실어주었고

자산운용이라는 형태로 여러가지 회사로 분사를 하게 된다.

그때 투자금을 회수하고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때 파생 된 회사로 요식업에 대한 창업과 프랜차이즈화를 주 업무로 삼고있다.

투자는 매우 신중히, 그러나 파트너쉽이 시작되면 아주 공격적으로 시장을 잠식한다.

우리회사는 업계에서 욕도 많이 먹는다. 

하지만 경쟁사회니까 신경쓰지 않는다.

나는 어차피 우리 회사와 직원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나쁜놈이 될 수 있다.


앞서 잠깐 말했던 힐링어쩌구콘서트 같은거

나오는 양반들 보면 미사여구에 심취한 사람들 같다.

그리고 정말 역할정도로 자신들의 인생을 미화한다.

나는 그런점이 가식적이고 싫다.

성공을 위해서는 힘을 잃은 쪽을 딛고 나가야한다.

전우의 시체는 밟으라고 있는거고

최후에 살아남는 자가 진짜 승자다.

사람이 죽는 일이 아닌 이상 불법적인 일도 눈감아야하는게 오너다.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회사를 키우는 것인데

열정팔이 꿈팔이들은 그런걸 모른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핑크빛 환상에 젖은 멍청한 젊은놈들에게 안팔리겠지.


장황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는데 쓰다보니 내 인생은 참 짧다.

정말로 여기까지다. 내 나이가 너무 어리다보니..


돈이란게 참 그렇다.

내가 별볼일 없을땐 돈이 많으면 무조건 행복할줄 알았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놓친게 너무 많고 행복하지 않다.

어릴때 부자들이 "돈이 다가 아니에요, 행복이 어쩌구.." 라고 하면 

그놈의 으시대는 주딩이를 찢어버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내가 그 재수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내 소원은 조망이 좋은 높은집에서 수입차를 타는 것이었는데

그건 이미 충분히 이룬 것 같다.

지금 소원은 뭐냐고?

그냥 회사 다 접고 작은 일식집 하나 하고싶다.

단골손님들이랑 마감 후 가게 닫아놓고 술도 존내 쳐묵는..


지금의 이 책임감을 견딜 수가 없다.

50여명에 달하는 임직원들에게 참 미안하고 나약한 소리지만

정말 나는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당장 내일 자살해도 이상할게 없다.

하지만 그 책임감이란 막중함이 나를 계속 움직이도록 채찍질 한다.

언젠가 이 굴레에서 벗어나겠지..하는


내가 어릴때 집안이 휘청이는 탓을 나라탓 사회탓으로 돌리고

부자들을 증오했었다.

특히 이건희회장님을 엄청나게 증오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참 한심하다.

책임감.. 기업가 정신이라는 것..

암을 이겨내고 회사를 다잡은 존경스런 그 정신력

삼성을 만든건 이병철회장이지만 

삼성을 키운건 이건희회장님이지, 참으로 그때가 죄스럽다.


그래, 말이 새는 것 같은데

어쨌든 중요한건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건

그 사람이 '무 슨일'을 하는지 보는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를 보아야한다는 거다.

중요한건 그거다.


70억명의 인구가 있으면

상위 1%인 7천만명은 7천만개의 인생을 산다.

누군가는 그렇게 되겠지


이 글을 보는 젊은이들의 위대한 시작을 응원한다.